이유2

sth 2016.04.30 01:18 |

초심자의 희망찬 마음이 다소 시들해진 탓일까. 어제는 또 다시 휘청거릴 만큼 불안했다.

TV프로 속에서 극심한 고소공포증을 가진 정준하가 아찔하게 높은 첨탑과 다리를 오르는 모습에 내 모습이 겹쳐보였다. 얼마나 두려울까, 얼마나 공포스러울까, 지켜보는 내 심장이 마구 뛰어댔다.

휴학 중인 과에서 이메일을 받았다. 지난 봄 학기를 마지막으로 다른 곳으로 옮겨간 full time faculty 대신에 분야의 저명한 역사가이자, 이론가인 사람이 새로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될 것이라는 안내였다. 그 메일을 받아보기 바로 하루 전에, 전공에 관한 예측들을 남편과 주고 받았었는데,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었던 나의 지적과 상당 부분 겹치는 학과의 변화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직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 완전히 자리잡지 않은 분야인지라, 앞으로 이것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 인지, 어떤 순서로 분야의 역사를 써내려 갈 것인지를 이야기 나누었었는데... 그리고는 이메일에서의 새 교직원의 약력과 저서를 살펴 보니 어제 내가 던지던 의문과 대다수 겹치는 그의 연구 분야에 왠지 들뜨게 되었다. 휴학 중 그의 저서를 모두 읽고 강의를 모두 시청하겠다는 야무진 발언도 했다. 간혹 이런 타이밍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슬며시 어떠한 운명적인 징조라고 상상해보기도 한다.

찰나였지만,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도 문득 들었다. 비록 반나절 후에 도로 두려움에 파묻힌 생각이었지만.

정준하가 첨탑 꼭대기를 바라보며 계단을 오르지 않았던 것 처럼, 지금은 멀리 보지 않으려 한다. 확실히 약속된 1년의 시간동안, 그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한 발씩 계단을 디디는 것에 집중해보려 한다. 중간에 패닉이 찾아오거나 너무 고통스러울 때에는 잠시 쉬어가도 된다고 그랬으니.



아직은 조금 더 먼 이야기이겠지만, 언젠가는 이 고민과 괴로움들을 밖으로도 쏟아내서 표현하고 싶다. 그저 일방적으로 내놓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다. 나 말고도 같은 아픔을 겪는 많은 이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세헤라자데 3악장은, 여전히 내게 최고의 클래식 음악이다. 그 때 겪은 온몸의 떨림 때문인지, 수 많은 음반을 모두 제치고 2012년 9월, 그날의 연주 버젼을 가장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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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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